[국방일보] 2023 하계군사훈련 현장을 가다 <육군사관학교>편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와 쩌렁쩌렁한 기합 소리. 머지않아 야전을 누빌 ‘화랑의 후예’들이 매서운 눈빛을 발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장교라는 부푼 꿈을 품고 입학한 새끼 사자들은 어느덧 맹수가 돼 있었다. 육군사관학교(육사) 4학년 생도들이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4일까지 종합전투기술 경연대회를 치르며 생도 시절 마지막 여름을 보냈다. ‘2023 하계군사훈련 현장을 가다’ 네 번째 주인공으로 육사 4학년 생도들의 종합전투기술 경연을 소개한다.
<태양보다 ‘뜨거운 동기애’>
밤낮없이 푹푹 찌는 가마솥 더위가 이어진 지난 4일. 새벽 5시부터 서울 노원구에 있는 육사 체력단련장이 종합전투기술 경연대회 대미를 장식하기 위한 생도들로 북적였다.
종합전투기술 경연대회는 △장애물 극복 △전투부상자처치 △전투체력 측정 △팀 물자 운반 △기동 △편제장비 조작 및 기동 등 지난 3년여 동안 배운 전투기술을 종합 평가하는 대회다.
참가자는 4학년 생도 280여 명 전원이다. 입학 당시 역대 가장 높은 44.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인재들. 누군가는 팬데믹 초기 입학해 극도로 제한된 생활을 해야만 했던 그들을 ‘코로나19 기수’라 불렀다. 하지만 시련 앞에서 이들의 의지는 더 단단해졌다.
이날 5체련장에서는 장애물 극복훈련이 펼쳐졌다. 외줄 오르기, 담장 넘기, 철조망 통과하기, 3단봉 넘기, 아일랜드, 대형 타이어 굴리기 코스를 통과해야 한다. 10~11명의 중대원 중 단 한 명도 낙오돼선 안 된다.
“파이팅! 힘차게 가자!” 2중대원들이 외마디 기합을 넣더니 순식간에 높이 5m의 외줄을 오르내렸다. 담장을 넘어 베어워크로 자세를 바꾸더니 16m 철조망을 지나 대형 타이어 앞에 모여들었다.
새벽 일찌감치 시작한 훈련이 무색하게 이마에선 땀방울이 비 오듯 흘렀지만, 닦을 시간도 없다. 생도들은 곁에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동기들에게 화답하듯 ‘악’ 하고 기합을 넣은 뒤 280㎏이나 되는 대형 타이어를 굴려 나갔다.
모든 장애물 코스를 극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내외. 이들이 평소 얼마나 혹독하게 체력을 단련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5㎞ 뜀걸음. 숱한 오르막과 험지로 이뤄진 코스를 달리기엔 이미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났을 터. 그러나 K2 소총을 꽉 쥔 생도들의 손등 핏줄은 더 굵어졌다.
15㎏의 군장과 함께 시작된 뜀걸음. 그때 한 생도가 쥐가 나 다리의 고통을 호소했다. 완주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하던 찰나, 생도는 절뚝거리며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때 앞서가던 동기가 돌아와 군장을 짊어지겠다고 나섰다. 앞뒤로 총 30㎏의 군장을 멘 동기를 보며 눈시울을 붉힌 생도는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이승재 생도는 “몸 상태가 안 좋아진 동기가 보인 순간 도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임관 후 야전에 가면 이보다 더 힘든 상황이 많겠지만, 훈련 뒤에 뿌듯함이 밀려오는 지금의 이 기분을 잊지 않고 임무완수에 최선을 다하는 장교가 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통제관과 참가자 임무 교대로 수행>
이날 대회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대회장에 생도들만 있었다는 것. 육사는 2~4학년 대상으로 ‘생도 주도 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한 주간의 훈련을 직접 계획하고, 다른 생도들을 통제하면서 장차 야전을 주도하는 능력을 체득하는 게 핵심이다.
종합전투기술 경연대회 역시 생도들이 통제관과 참가자 임무를 교대로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절대 ‘대충’은 없다.
김현 생도는 “명령 하달식이 아닌 생도끼리 과제를 선별하고 수행하는 과정이 흥미롭고 뿌듯했다”며 “임관 후 야전에서 장교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는 기회가 됐고, 자신감도 생겼다”며 활짝 웃었다.
<전 세계 최고, 최정예 장교 육성>
앞서 4학년 생도들은 지난달 10일부터 21일까지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 훈련에 참여했다. 육군3보병사단 훈련에 ‘생도분대’로 동참한 것이다.
1학년 생도들은 전투수영으로 생존능력과 하천 도하능력을 배양했다. 완전군장 상태로 다양한 전투기술을 익히며 전사적 기질과 불굴의 의지를 갖췄다.
2학년 생도들은 유격훈련으로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은 물론 장애물 극복 및 유격 전술능력을 기르며 한 단계 성장했다.
3학년 생도들은 공중침투 능력 검증을 위해 항공기에서 강하하는 ‘공수기본 자격강하’ 훈련을 했다. 이들은 지난달 3일부터 2주 동안 착지 동작, 11m 모형탑 훈련 등으로 우발상황 대처 요령을 익혔다. 또 매일 PT 체조와 5㎞ 뜀걸음을 하며 강철 체력을 확보했다.
종합전투기술 경연대회 현장에서 4학년 생도들과 5㎞ 뜀걸음을 함께한 권영호(중장) 학교장은 “국민의 지원으로 육성하는 생도들을 전 세계 최고, 최정예 장교로 배출하기 위해 그 어떤 부대보다 실전적이고 강도 높은 교육훈련을 하고 있다”며 “생도들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긍심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훈련에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